SF용어였던 ‘21세기’가 현실이 된 지 오래인 지금, SF 그 자체의 정체성에 어떤 변화 내지는 위기가 닥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앨빈 토플러가 40년쯤 전에 던져놓았던 말을 되새기는 것으로 출발점을 삼으면 적절할 듯하다. 그는 1975년 런던의 현대예술연구소(ICA) 강연 중에 다음과 같이 얘기한 바 있다.

“산업 사회에서는 개개인들뿐만 아니라 SF도 역시 자기정체성의 실종 위기를 맞고 있다. SF는 지금 전체 문화체계 안에서 그 스스로의 독자성을 보존해나가려면 이른바 ‘주류문학’이라고 하는 기존의 문학과 어떻게 관계설정을 해야 할지 곤란을 겪고 있다. 또한 판타지소설이나 초현실주의, 부조리연극 같은 것들과는 어떻게 차별성을 유지해 나갈지도 문제이다. 게다가 ‘미래주의’나 ‘미래학’과 충돌하는 부분도 있다.”

위의 언급은 당시 한창 융성하던 뉴웨이브SF의 영향을 고려하는 접근이어야만 정확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뉴웨이브SF는 사실상 화석화 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위의 토플러의 전망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선구적인 혜안이 아니었던가 하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는 슬립스트림Slipstream의 탄생을 예견한 것이 아니었을까?

문학의 한 장르를 의미하는 용어로서 슬립스트림은 1989년에 사이버펑크 작가인 브루스 스털링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의 원래 뜻은 유체역학에서 고속 운동을 하는 물체 뒤로 주변보다 압력이 낮아지는 영역을 의미하며, 프로펠러의 후류나 자동차 경주에서 앞차에 바짝 따라붙는 드래프팅 기술 등이 슬립스트림의 보기로 거론되곤 한다. 한편 문학 장르로서 슬립스트림은 SF와 판타지, 주류 문학의 경계가 서로 섞이거나 혼합된 양상을 나타낼 경우 붙는 호칭이다. 스털링 본인은 이 용어를 ‘기묘함strangeness을 자아내는 이야기’로 설명했는데, 그 내면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판타지나 SF보다는 훨씬 확장된 시야에서 20세기 기술문명의 삶이 풍기는 어떤 기묘함을 포착하는 것이란 뉘앙스가 깔려있다. 그래서 슬립스트림은 기존의 장르소설보다는 훨씬 주류에 가깝지만, 주류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히 이질적이기도 하다. 이런 계열의 작가로서 돋보이는 인물 중의 하나로 마이클 셰이본을 들 수 있다. 주류(퓰리처상 수상:『캐벌리어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와 장르(휴고상, 네뷸러상 수상:『유대인 경찰연합』) 양쪽에서 공히 인정받은 그의 소설들은 확실히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모호한 이야기들이다. 주류에서는 포스트모던으로, 그리고 SF 독자라면 뉴웨이브의 21세기 버전으로 진단할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쪽도 충분한 설명이라 하기엔 곤란하다.

답은 바로 ‘사이언스’ 픽션이란 말 안에 담겨 있다.

슬립스트림은 SF와 판타지, 그리고 주류문학이 상호 수렴해가는 양상이라고도 말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SF와 판타지 등의 모든 환상서사 문학을 포괄하려는 확장성도 느껴진다. 그렇다면 슬립스트림은 과연 SF가 진화해가는 미래상일까? SF의 외연이 넓어지다가 어느 순간 슬립스트림에 녹아들어가는 것일까?

굴드에 따르면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란 발전이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동하는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가는 변화 그 자체를 뜻한다고 한다. 그 점을 유념하면 슬립스트림은 확실히 21세기를 질주하고 있는 현대 기술문명의 후미에서 SF나 다른 장르들이 서로 교란되고 뒤섞이는 양태를 잘 표현하는 말인 듯하다. 그러나 소설이란, 특히 SF란 늘 미래의 가능성을 미리 탐색해온 고독한 분야이다. 작가들은 질주하는 문명이 일으키는 후류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존재들이 결코 아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을지언정 흙먼지 너머 앞쪽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를 늘 감각을 곤두세워서 포착하려 애쓴다.

결국 슬립스트림이란 명칭은 사전적 의미로 보면 어떤 과도기의 스케치일 뿐이지 그 자체로 SF라는 이름을 대체할 새로운 시대의 핵심 정서를 안고 있지는 않다. ‘경이감sense of wonder’은 명백히 ‘기묘함strangeness’과는 구별되는 SF 고유의 정신이다. 21세기가 경이감의 새로운 정의를 요구한다면, SF작가는 그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전히 SF라는 이름으로 읽히고 회자될 것이다. 토플러가 지적한 SF의 새로운 정체성 모색은 바로 21세기적 정서란 어떤 환경이고 어떤 요구인지를 규명하라는 숙제이다. 답은 바로 ‘사이언스’ 픽션이란 말 안에 담겨 있다.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질주’라는 시대이고 시대 정서는 그 질주에 의해 교란되고 재편된다. 이런 환경이야말로 SF적 서사의 탐색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무대가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여전히 SF라는 기치 아래 우주의

무한한 서사의 가능성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박상준

현재 서울SF아카이브 대표이며 SF전문출판 ‘오멜라스(웅진 임프린트)’ 대표와 장르문학 전문지 『판타스틱』의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화씨451』 『라마와의 랑데부』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SF와 교양과학 관련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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