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은 가장 저다운 과정이죠.

내 세상의 내 이야기를 하니까.



이번에 책이 두 권 나오잖아요. 『왕의 창녀』와 『씨앗』은 어떻게 다른가요?

원래는 밝은 이야기와 어두운 이야기로 나눌까 했었어요. 『씨앗』은 공주-기사 연작으로 시작하는데요. 그게 분량이 꽤 되니까, 어느 권이든 그걸 맨 처음에 넣고 그 분위기를 따르자고 했어요. 그래서 『씨앗』에는 옛날이야기 느낌이나 환상성이 강한 이야기가, 『왕의 창녀』에는 더 어두운 이야기가 들어갔어요.


다른 작품에 비해 공주-기사 연작은 문체도 분위기도 다르잖아요. 그건 어떻게 쓰게 된 거예요?

 “놀고 있네” “너 죽을래?” 같은 말을 하는 공주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옛날이야기의 공주들은 가녀리고 연약하고 탑 위에서 “살려주세요” 하면 왕자가 구해주잖아요. 그런 거 안 하고, 칼 들고 건들건들 하는 공주를 써보고 싶었어요.


하필 공주인 이유가 있어요? 다른 이야기에도 ‘여자’가 많이 나오는데요.

실제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까. ‘천상 여자’와 ‘상남자’의 조합이라고 해도 결국은 둘이 주고받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하다못해 동물이나 곤충도 상호작용을 하는데. 살아 있는 한 관계라는 게 일방적일 수 없거든요. 그런데 이야기에선 항상 여자는 탑 위에서 가만히 기다리죠. 쟤는 대체 어떻게 사나, 화장실은 가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제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은 성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몸 쓰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여자들인데, 어쩌면 불편할 사람은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몸으로 싸우고 공격하고, 이런 거 전혀 안 무서워하니까.


여자들이 대상화가 안 된달까요. 정도경 님 소설에는 ‘어두운데 생명력이 넘친다’는 평이 달려 있는데요. 나는 오롯이 혼자고 자유롭고 싶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소리 높여 말하는 느낌.

나를 자유롭게 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테다. (웃음)


「왕의 창녀」를 비롯해 ‘치정’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요. 치정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보통 사람이 극단적인 일을 하는 이유가 돈 아니면 치정 때문인 것 같아요. 보통은 그 둘이 같이 가고요. 저는 돈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강렬한 이야기를 쓰려면 치정이 얽히네요.


그럼 치정이란? 치정관계란 어떤 관계인가요.

모든 관계에 강자와 약자가 있고, 갑과 을이 있는데요. 갑은 을이 있어야만 갑인 거잖아요. 절대 일방적인 게 아니거든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 있어야 강자가 되는 거지. 갑이 을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관계가 유지가 되는 거고요. 남녀관계가 정말 그렇죠. 돈이 오가는 관계는 돈을 포기하면 관계가 끊어지잖아요. 하지만 감정과 욕망이라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갑-을을 나누기 가장 어려운 게 남녀관계 같아요. 보통은 여성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하고 남성은 강하다고 생각을 하죠. 하지만 잘 보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쥐는 건 아니란 말이에요. 자세한 건 당사자만 알 수 있죠. 그런데 정작 그들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은 거, 그게 남녀관계인 것 같아요. 치정 관계.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이름이 없잖아요. 이유가 있나요?

이름을 붙이면 ‘이 사람은 가짜’ 라고 확정되는 것 같아서 쓸 때 현실감이 떨어져요. 이름이 없으면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거든요.


단편 후기를 보면 경험담이 많은데요. 본인이 글을 쓰는 방식과 관련이 있나요?

소재를 찾을 때 실제 상황에서 찾거든요. 제 경험 말고도 신문이나 남의 이야기 등 간접적인 경험까지요. 그런 건 구체적이니까 그에 대해 쓰면 후기가 나오죠. 후기도 저한테는 단편만큼 중요해요.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나온 거라서.


자기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는 일기 같은 느낌이 들진 않아요?

그렇지는 않아요. 소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건을 어떻게 배치할지, 시작과 끝을 어떻게 놓을지를 생각해야 하잖아요. 일기처럼 그 당시의 감정에 매몰되어서 쓰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면 소설을 못 써요. 거리가 있어야 완급 조절이 되거든요.


그러면, 글은 보통 어떨 때 써요?

글은 시간이 날 때 쓰죠. 구상은 아무 때나 하고, 날 잡아서 하루 초고 쓰고, 기회가 되면 계속 퇴고를 하고. 중편 이상의 길이가 되면 체력이 딸려서 허덕거리는데, 그래놓고 퇴고도 강박적으로 해요. 계속 안 쓰면 못 쓰게 될 것 같아서 불안한 것도 있어요. 글을 아예 안 쓰면 모르겠는데, 전 소설 아닌 다른 종류의 글을 만드는 작업은 계속 하고 있잖아요. 제 글을 안 쓰면 창작 쪽은 말라붙을 것 같아요. 창작이 저한테는 다른 쪽보다 더 중요하거든요. 


어떻게 중요한가요?

제가 가장 저다운 점이 글을 쓰는 거예요. 예를 들면 논문은 형식이 정해져 있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참고해야 하고, 주석이 있어야 하죠. 번역은 애초에 남이 쓴 거고요. 창작은 가장 저다운 과정이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세상의 내 이야기를 하니까.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실 건가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기를 지나 동어반복적 이야기를 쓰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계속 새로운 걸 써야 한다는 게 저한테 절박한 과제인데 어떻게 해결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와는 별개로 추리소설을 잘 쓰고 싶어요. 범죄 수사물을 좋아하거든요. 그럼 대체 누굴 죽이고 범인은 누구로 하나. 이런 거 고민하고 있어요.




라키난

책과 밥을 주면 글을 씁니다. 고료도 좋아합니다. 거울에서 기사필진으로 주로 인터뷰 담당, SF도서관에서 행사와 판매 담당.

현재는 평화로운 일개 취업자를 간절히 지망. 장래희망은 안락의자 탐정 타입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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