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좋은 펀드 하나 있는데……


이 코너의 앞선 세 글은 국내 SF 시장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미래에 대해 말해보자. 앞으로 팬덤이 SF 시장에 어떤 방식으로 능동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를 검토해볼 때다.


팬덤이 자급자족하는 동인지형 시장으로의 변화가 가장 안정된 방법이다. 최근 각광받는 크라우드 펀딩 역시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성되면 그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팬들이 펀딩(선입금)을 하는 방식이다. 판매는 펀드 참여자를 위시한 팬덤 내부의 소비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서점 배본 등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최소 부수를 1000부 수준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주문자에게만 배급하는 한정 제작도 가능하다. 따라서 프로젝트가 아예 엎어지지만 않는다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확률이 낮다. 만들고 싶은 사람이 만들고, 사고 싶은 사람이 사는 이상적인 시장이다. 아아, 이윤보다 사랑이 우선하는 유토피아……. 

이 방식에는 팬덤의 폐쇄성으로 귀결되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아마추어 프로젝트의 경우 저작권 등의 문제로 에이전시와 협상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저작권 시효가 만료된 작품 위주로 진행될 확률이 높고, 그 정도로 오래된 SF는 기존의 매니아 밖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낮다. 또한 제본이나 편집, 표지 등을 둘러싼 완성도의 문제도 있다. 이 역시 매니아들은 ‘SF로 대동단결’ 연대의식을 통해 아마추어 수준의 완성도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일반 독자들의 주의를 끌기는 더 어려워진다. 거기다 서점 등을 통한 일반적인 판매 루트를 이용하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위 문제들은 그저 ‘이미 SF를 사랑하는 우리’가 보다 즐거운 독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어두워지는 미래를 밝히고자 한다면 여기에서 만족할 수는 없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에 SF를 영접한 소년소녀들은 이제 40대가 되었고, 이 연령대를 기점으로 SF 구매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절대인구수의 감소나 독서인구의 감소로 인한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낙폭이 분명한 수준이다. 다시 이 불씨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위에서 단점으로 지적한 부분을 극복하면 그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판매고를 올린 황금가지의 ‘파운데이션’ 박스세트가 좋은 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개인이나 소규모 프로젝트를 넘어 기업화된 조직구조가 필요하다. 바로 출판사다. 잠깐. 나는 이 코너의 지난 글에서 SF 출판업계가 이미 한정된 자원을 소모하면서 점점 축소 중이라고 썼다. 그래서 기존 출판 시스템의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시 결론이 출판사로 이어져도 될까?

가능성은 있다. 브로커를 쓰면 된다. 방식은 다음과 같다. 출간을 원하는 타이틀 하나를 정해 팬들이 ‘선금’을 브로커에게 입금하고 그 참여 인원수는 웹상에 실시간으로 고지된다. 이 돈은 실제 비용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책이 발간되었을 때 구매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일 것이다. 자, 『A』라는 타이틀이 보고 싶어서 만원을 선입금한 독자들의 숫자가 늘어가는 게 보인다. 그걸 지켜보다 ‘이 정도 초기 구매자가 받쳐주면 해볼 만하겠다’고 판단한 출판사가 『A』를 출간하고 싶다고 브로커에게 연락해 출간을 약속한다. 책이 출간되면 브로커는 계약한 출판사에게서 선주문량만큼 책을 구매한 뒤 선주문자들로부터 잔금을 받고 책을 넘겨준다. 팬들이 희망하는 타이틀을 내면서 출판사의 리스크도 줄이게끔 기획한 변형 펀딩이다.

자, 이제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달까? 펀드 은행의 역할을 할 정도로 재정적인 신뢰가 있고 출판사와 소통할 여지도 많은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생각한 제1후보는 대형 서점이다. 실제로 알라딘에서는 기존의 자체 북펀드를 강화하는 방식 중 하나로 이 방식을 검토 중에 있다. 현실적인 문제가 몇 가지 남아 있다. 예비 독자를 모집하는 도중에 출판사가 브로커와 논의 없이 몰래 저작권 계약을 한다거나, 선주문 판매를 베스트셀러 집계에 넣을 수 있는가 등의 절차적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고심 중인, 아직 미완성인 방식이다.


이 미완의 계획을 여기 늘어놓은 이유는 하나다. 다른 누가 먼저 실행해도 좋고 맹점을 지적해도 좋고 변형 발전을 도모해도 좋고 좋은 아이디어를 제보해주셔도 좋다. 팬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숨구멍이 하나라도 더 뚫리면 그걸로 오케이다. 물론 그중 대부분의 가능성이 엎어지고 그만큼 많은 미래가 삭제되겠지만, 나는 이 코너의 첫 글에서 이미 말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바로 역전의 SF 용사, 스파르타 최후의 ‘300’이라고. (웃음)





최원호

현재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외국소설/예술 담당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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