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공포 영화에 감금당한 자들의 하나뿐인 탈출구


녹취록을 풀면서 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 가득한 녹음파일에서 단어들을 골라내기 위해 상당히 애를 써야만 했다. 미안하게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의 대부분은 내 목소리였다. 권민정 작가를 처음 만난 날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얼굴 근육이 땅기도록 처웃고 집에 돌아온 기억들이 생생하다. 내가 노잼이라 그녀의 이 무지막지한 발랄함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으나, 아마 그 발랄함은 책을 산 사람들은 느끼지 않으려고 해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마음 편히 전달해 볼 생각이다.

언젠가의 12월, 나는 그녀를 포함한 여러 작가들과 함께 연희동에 위치한 SF&판타지도서관에서 권민정 작가가 추천한 영화 <옴 샨티 옴>을 관람했다. 작고 마른 체구의 그녀는 “인도 영화를 보면 진이 빠져서 안 먹을 수가 없다니까요!”라며 엄청난 양의 음식을 주문했고, 나는 영화를 보다 그녀의 예상대로 진이 빠져서 음식을 주구장창 먹어댔다. 영화 하나에 멜로, 스릴러, 호러, 코미디, 뮤지컬을 한꺼번에 다 때려넣어, 그야말로 서사의 에너지가 대폭발하는 경험이었다. 『우주화』로 묶여나온 이 책을 보면서 나는 그때 그녀가 보여주었던 그 영화를 생각했다.

서사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경험에 대해서.


“권민정 작가한테 엽편이란?”

“농담.”



엽편은 농담


권민정 작가의 소설에는 당연히 여러 특징들이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라면 역시 ‘엽편의 여왕’이라는 점일 것이다. 작품집이 묶여나온 작가 중에 목차가 이렇게 긴 작가가 대체 한국에 얼마나 될 것이며, 엽편이라는 게 그다지 많이 생산되지 않는 이 나라의 문학적 환경 속에서 이렇게 엽편을 주구장창 일관되게 써 온 작가가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내 읽음이 짧은 것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권민정 작가 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그와 권민정 작가의 대담을 주선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엽편葉片이라 함은, 나뭇잎 한 장에 다 쓸 수도 있을 법한 짧은 소설을 뜻하는 말이다.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 결말이 ‘꽁트’의 공통적 특징이다. 짧고 간결하되 명확한 서사 구조,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할만한 일상적 상상력이 필요한 장르다. 엽편이 유난히 많다는 질문에 대해, 권민정 작가는


“제가 글을 길게 못 써요.”

  

(스포일링 있음. 반전이 중요한 소설들이라 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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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글들은 뒤에 가서 완전히 지금까지의 서사를 뒤집어버리는 엽편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독자를 화들짝 놀라게 한다. 이런 식의 ‘서프라이즈’에는 긴 글은 그리 적합한 매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권민정 작가의 더 굉장한 점은 “그거 놀라라고 한 거 아닌데?”의 뻔뻔스러움이다.


“글 쓰고 나면 사람들이 저보고 자꾸 성격 나쁘다고 해요. 남들은 비극이라고 그러는데, 저는 해피엔딩으로 쓴 거고, 그런 경우가 많거든요.”


“이를테면?”


“아예 의도랑 다르게 읽히는 경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K씨!”


「K씨의 개인사정으로 이번 호의 연재는 쉽니다」의 뒤에 달려 있는 작가의 말은 “마감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서 우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라고 쓰여 있다.


“저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제길 마감 따위, 글쓰기 싫어!’ 같은 거였는데, 사람들이 죄다 ‘훌륭한 작가의 귀감입니다’ ‘정말 치열한 작가군요’이런 소감이나 내놓고! 아무도 그런 얘기를 안 해주고 죄다 정반대의 얘기를…….”


“기사의 사랑도! 난 페미니즘 소설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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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의도랑 다르게 읽히는 경우는…… 많으니까요…….”


이건 심하지만.


“사실 제 의도를 알면 안 돼요! 그래서 사실 작가의 말을 길게 쓰면 안 되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전 아무 말도 하면 안 돼요…….”


사실 그 능청스러움이 이 엽편의 농담에 불을 활활 지피는 것도 사실이다. 그녀의 능청은 세상에 없는 환상의 동물 휴가를 잡으러 간다는 내용의 엽편,「휴가」같은 소설들로 연결된다.



도망갈 수 없는 영화관에서 냉소하기


독자의 기대를 자꾸 배신하는 바람에 성격 나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는 작가에게 나는 돌직구를 던졌다.


“작가님은 왜 성격이 나빠요? 왜 자꾸 빈정거려요?”


“거리두기?”


“음?”


“저는 예를 들자면 공포영화를 진짜 못 봐요.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상황이 되면 필사적으로 자기 최면을 걸어요. 이건 화면이야, 소품 지금 준비하고 카메라 돌아가고 있고, 피 몇 리터 만들어가지고 지금 아유 스탭들 팔 빠졌겠네, 이러면서 봐야지 저는 그걸 볼 수가 있는 거예요.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걸 정면으로 보면 너무 힘들잖아.”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선배들이 겁이 많은 날 놀려줄 심산으로 강의실을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공포영화 감상회를 연 적이 있었다. <디아이>라는 태국영화였고, 나는 고통스러워하다가 엠피쓰리를 꺼내서 귀에 꽂고,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를 틀었다. 그 순간 공포였던 화면은 순식간에 코미디가 되었다.


“나도 핑클 들은 적 있어요. 핑클 들으니까 계속 웃음이 터지더라.”


“그쵸,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게 이상한 포인트에서 빵빵 터져서 웃으니까 사람들이 엄청 이상하게 보기도 하고. 이다음에서 피가 나오겠지, 아싸 맞췄다! 어쩜 저렇게 나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가!”


“현실의 공포에서 도망가는 거구나.”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거죠. 인생은 억지로 끌려들어 간 영화관과 같아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어요. 그냥 계속 봐야 돼.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나는 여기서 어떻게든 도망갈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거예요. 냉소하면서.”


도망갈 수 없는 영화관.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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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은 뒤틀리고, 휴가는 갈 수가 없고, 분노의 에너지는 흐트러지고 말지만 우리는 그 앞에서 낄낄대고 웃을 수 있다. 바로 그것이 권민정 작가의 소설이 가진 냉소의 힘이었다.


“모든 것은 변화하지만, 변했으면 하는 건 꼭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건 꼭 변하잖아요?”



무無를 탐색하기


물론 권민정 작가의 소설이 이렇게 하나같이 가볍고 유쾌하기만 한 건 아니다. 「나하의 거울」이나 표제작인 「우주화」같은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계관이 한 축에 또 존재한다. 침묵을 탐색하는 음악의 구도자 이야기를 다룬 「나하의 거울」을 읽고, 나는 얼마 전에 새로 발명되었다는 “가장 검은색”에 대한 기사를 떠올렸다. 감각을 한다는 것은 감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반으로 정의될 수 있다. 들린다는 것은 들리지 않는다는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유有는 무無의 증거이다. 


“예술이라는 거 자체가 좀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사실 어디로 창작을 할 때 이상으로 삼는 게 있잖아요. 근데 정확하게 그게 잘 보이진 않아요. 그래도 뭔지는 모르지만 그곳을 향해서 가야 되고, 그곳을 향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다리를 놓아야 하고. 그렇다보니까…… 원론적으로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주화의 색깔은 도무지 무슨 색깔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모든 걸 감내하고서 결국 꽃을 피우려는 행위는 그 세계의 법칙 속에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꽃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세계와 어떤 의미의 소통을 이루고 소멸을 이룬다.


“우주화는…… 언어라는 수단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언어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지각하고 언어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작가라는 존재는 어느 순간 지각과 해석을 넘어 언어로 어떤 세계를 창조해나간다. 글로 관계를 구축해낸다. 권민정 작가는 친구가 없어서 친구도 글로 배워서 그렇다며 키득거렸다.

마지막 단편인 「거울바라기」의 주인공 미라의 눈 속에서는 “거대한 새였고, 뱀이었고, 용이었고, 범이었으며, 거북이이자 사람”인 빛이 하나 빠져나간다. 모두가 거울을 보듯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커다란 무無가 그 순간 형상을 가지게 된다. 권민정 작가의 언어는 바로 그 언어를 사용하고 읽어나가는 우리를 이야기한다. ‘존재’가 ‘부재’를 전제한다면 마찬가지로 ‘부재’ 역시 ‘존재’를 전제한다. 텅 비어있는 공간은 바로 그 공간에 비치는 것이 우리의 감각들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계신가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권민정 작가는 박장대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계시나요? 거기 계십니까? 제 얘기 들리시나요? 여기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사 주세요…….”


나는 또 한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처웃어댔다. 이 무시무시한 공포 영화 속에서 대체 그녀가 없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쏘쿨하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연습하세요. 전 중학교 때부터 연습했어요. 청소년이 아니라서 좀 힘들 수도 있겠지만. 단, 연습해서 비뚤어지고 나면 원래의 자신으로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요.”


각오를 하고 권민정의 드립교실에 발을 들여볼까 생각 중이다. 아무튼 여러분, 여기 그러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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